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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훈 컬럼 - 2026년, 믿음으로 건너야 할 약속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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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절망의 끝자락이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작점이다

희망찬 2026년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수많은 사람이 비장한 각오로 새해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야심차게 세운 계획들조차 1월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무력감이 우리 신앙생활에도 침투해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 통독, 새벽 기도, 전도 등의 목표가 반복되는 일상과 영적 게으름 속에서 쉽게 무너지곤 한다.
그러나 2026년, 우리는 이 습관적인 패배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파도가 높고 거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여호수아와 같은 ‘절대 긍정의 믿음’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범람하는 요단강과 견고한 여리고 성 앞에 서 있는 형국이다. 저출생과 인구 절벽, 양극화와 세대 갈등, 고물가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거대한 장벽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한국교회 또한 성장의 정체와 다음 세대의 이탈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정복해야 할 ‘현대의 가나안’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이 상황은 태산과도 같아 보인다. 그러나 절망의 끝자락이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작점이다. 모세가 떠난 후 두려움에 떨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승리를 전제로 한 하나님의 확증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갔다. 2026년을 승리의 해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여호수아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절대 기준’이 돼야 한다. 여호수아가 승리한 비결은 탁월한 전술이 아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라는 말씀에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유튜브와 SNS 등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세상의 소리에는 민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음성에는 무뎌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세상을 이길 힘은 정보가 아닌 믿음에 있다. 그리고 그 영적 근력은 오직 말씀으로 단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 1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성경을 펼쳐야 한다. 말씀이 우리 안에 채워질 때 비로소 담대함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순종’으로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여호수아는 물이 마른 뒤에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닿는 순간, 흐르던 물이 멈춰 섰다(수 3:15~16).
기적은 계산하며 상황을 재는 자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두려워도 전도하고, 부담돼도 헌신하며, 힘들어도 먼저 용서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우리의 순종이 선행될 때 하나님은 비로소 길을 여신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의 돌’을 세워야 한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넌 후 열두 돌을 세워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했다. 우리가 쉽게 낙심하는 이유는 지난날 우리를 도우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잊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베풀어 주신 은혜, 고비마다 도우셨던 손길을 기억해야 한다. 그 감사의 기억들이 모여 2026년의 파도를 헤쳐 나갈 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수 1:5)라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여리고 성이 아무리 견고해 보일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2026년, 우리 앞에는 약속의 땅이 기다리고 있다.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무장하여 기적과 승리의 한 해, 그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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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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